어둠이 짙게 깔린 강남의 밤거리, 이용준 형사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운전대를 잡았다.
2007년 8월 31일, 경찰 공채 시험에 합격한 그는 강남경찰서 지구대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 7월 24일 형사과 강력1팀에 배치된 후로, 그는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사 문제로 인한 압박감, 동료들과의 미묘한 거리감.. 그는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랑 저 사람들은 뭔가 안 맞아. 여기서는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아.”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같은 교육을 받은 동기는 그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강력반은 보통 두 명씩 조를 이루는데, 그는 왕따였는지 특별한 파트너가 없었어요. 그래서 종종 지구대로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죠.”
그날 밤, 야근을 마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부산에 있는 제보자 서 씨였다.
밤 10시, 그는 서 씨가 있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부산에 거주하는 김 씨도 있었다.
서 씨는 김 씨를 이 형사에게 소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형사가 서 씨를 알게 된 지는 열흘도 채 되지 않았다.
7월 26일, 그는 서 씨와 술자리를 가졌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술자리 끝에, 그는 서 씨의 집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상사의 전화를 받은 그는 급히 집을 나섰지만, 경찰서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팀원이 요청한 강남구의 절도사건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현장을 촬영하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촬영을 마친 후, 그는 차량 내비게이션에 ‘부산 정비소’를 입력했다.
그곳은 서 씨가 소개해 준 김 씨의 거주지 근처였다.
오전 10시 43분, 그의 차량은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를 부산으로 이끌고 있는가? 그는 어떤 결심을 한 것일까?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오후 12시 35분, 이 형사의 차량은 경부고속도로 1차선 가드레일에 충돌했다.
119 구급대는 급히 충북 영동병원 응급실로 그를 이송했다.
병원에서는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치료를 진행했다.
그러나 치료 도중, 그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응급실을 떠났다.
이것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었다.
그 후, 이 형사와의 연락이 두절되자 그의 부모는 실종 신고를 했다.
시간은 흘러 7월 29일 오후 12시 50분경, 충북 영동의 한 낚시터에서 그의 시신이 떠올랐다.
마을 주민인 민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물 위에 떠 있는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7월 29일의 무더운 날씨 탓에 시신은 이미 심하게 부패하여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와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소지품을 수색했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은 경찰관 신분증이었다.
실종된 지 이틀 만에, 이용준 형사의 차가운 몸이 그렇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는 더욱 미스터리했다.
경찰은 신속하게 그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모든 언론 매체도 그의 사망을 자살로 보도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경찰이 현장 조사도 전에 먼저 자살로 단정 지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현장에 가기도 전에 “고속도로에서 음주 사고 후 자살한 것 같으니, 여자 문제로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처리합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형사는 이미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오래였고, 지난 두 달 동안 그녀와의 연락 기록도 전혀 없었다.
사건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형사의 죽음을 단순한 자살로만 보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그가 왜 경찰서로 출근하지 않고 부산으로 향했을까?
강남경찰서는 그의 행방에 대해 ‘무단결근’이며, 업무와는 무관한 독단적인 일탈 행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부산으로 향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평일에 신입 강력팀원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는 3년 연속 모범 경찰관 표창을 받은 우수한 경찰관이었다.
서 씨라는 제보자를 만나기 전, 그는 야근을 마치고 강남경찰서가 아닌 역삼지구대로 들러 자료를 복사했고, 차량에 주유도 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행보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었다.
한 강력반 경력 경찰관은 그의 행보를 보고 말했다.
“어떤 사건과 관련해 제보자를 소개받았고, 그의 부산행은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교통사고 역시 의문투성이였다.
사고 원인이 음주 운전으로 결론지어졌지만, 이 형사는 술을 거의 못 마시는 체질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1%로, 거의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처럼 그의 죽음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
무엇이 그를 부산으로 이끌었는가? 그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가로, 그의 죽음에 더욱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발견되었다.
이 형사의 몸에서 일반 감기약에 들어있는 디펜히드라민이 검출된 것이다.
하지만 영동병원에서는 링거 외에 특별한 처방이 없었으며, 인근 약국에서 감기약을 구매한 흔적도 없었다.
그가 병원을 떠난 후 도착한 낚시터까지의 거리는 약 2.2킬로미터.
영동병원에서 낚시터로 가는 길은 험난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택시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 형사를 태운 택시 기사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그가 이정표도 없이, 병원 슬리퍼를 신은 채 혼자 그 거리를 30분 이상 걸어갔다는 뜻이다.
그 험한 길을 슬리퍼로 혼자 걸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는 상당히 부패한 상태였다.
부검 결과, 병원을 나온 직후인 7월 27일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낚시터에서 27,28,29일 동안 아무도 이 형사를 목격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의 시신이 발견된 물의 깊이는 불과 1.5미터에 불과했다.
부검 결과에는 이상한 점이 더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출혈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영동병원에서 찍은 CT 스캔에는 그런 출혈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목 부위 피부에는 줄로 조인 듯한 압박 흔적이 있었다.
흔히 익사 사고에서는 부검 시 플랑크톤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형사의 부검 보고서에도 플랑크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의 폐에서는 플랑크톤이 발견되었지만, 간, 신장, 비장, 골수 등에서는 플랑크톤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심장이 뛰고 있다면 폐뿐만 아니라 간과 신장 등 다른 장기에도 플랑크톤이 유입된다.
그러나 이 형사의 경우, 폐에만 플랑크톤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물에 들어갔음을 시사한다.
더욱 기묘한 점은 플랑크톤의 종류였다.
저수지 물에 서식하는 플랑크톤과 이 형사의 몸에서 발견된 플랑크톤을 비교한 결과, 대부분 유사했지만 ‘디틸륨’이라는 플랑크톤이 그의 몸에서만 발견되었다.
이 디틸륨은 이전까지 민물에서 발견된 적이 없으며, 바다에만 서식하는 종류였다.
이는 이 형사가 사망 직전에 바닷가에 가지 않았다면, 부검 과정에서 시신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검사 결과를 옮기는 과정에서 오타가 발생했다며, 최종 부검 보고서 수정을 깜박했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부모는 “우리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며 서명 운동을 벌였고,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2012년 12월, 청주지방검찰청은 자살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타살이나 타인의 개입을 추정할 근거도 없다고 결론지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있다.
누가 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는가?